[16일]2005.5.17. 혼자가 되어 프놈펜으로



오늘역시 더워서 자다 몇번 깨고 모기때문에 깨고 하나가 일어나보니 5:45.
프놈펜으로 가기 위해 일찍 기상.
프놈펜까지는 6시간정도 걸리며 버스비는 $6.
아침은 역시나 공짜~
새우죽으로 간단히 먹고 버스 픽업와서 가려는데...
몇일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배웅하러 나와주었습니다.
덕분에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했었는데... 혼자 간다고 먹을것도 주고 이것저것들 주려 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뒤로 하고 프놈펜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입니다.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베트남으로 가려는데 하루 자고 가려고 가는 겁니다.


출발한 후 곧... 기절해 잠을 자는데.. 깨어나 보니...
다들 흰색 종이 상자와 물이 있습니다.
아마도... 버스에서 나눠준 모양인데... 잔다고 안줬습니다. ㅜ ㅜ
지금같으면 일단 말해 받고 봤을텐데...
당시 배도 그다지 안좋고 해서 관둔 모양입니다.


이곳에 들려 한 30분 쉽니다. 10:20쯤 다시 출발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먹을것을 사 먹더군요...
음.. 아침식사? 점심식사?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프놈펜... 6시간정도 걸렸으려나?
예전에는 도로가 안좋아 훨 오래 걸려 차라리 그저께 본 큰 호수에서 배를 타 여기로 오는게 빠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제 도로를 포장해 버스가 더 빠르답니다.


프놈펜에 내리자 마자 짐을 찾는데 사람들이 둘러쌉니다.
자기 오토바이 타라고들 모토 모토, 얼마 얼마 하며 자꾸만 잡습니다.
처음에 2000 부릅니다. $0.5.
지금 생각하면 참 싼데... 난 걸어가걸랑 하면서 계속 걸어가니...
나중에 쫓아오던 놈들이 500까지 가격을 떨굽니다.
500이면 125원... 후... 지금이라면 탔을지도 모르는데... 그 당시는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책에 나온 지도 한장 달랑 들고 길 잘도 찾아갔습니다.
이곳 저곳 물어가며 1시간도 안걸려 도착한곳은 캐피톨하우스.
가장 처음으로 유명해진 게스트하우스라고 합니다.


화장실도 있고 선풍기는 당연히 있고


좀 위생상태가 그럭저럭인 침대...
가격은 $3에 묵기로 합니다.
리셉션에서 근처가 나와있는 지도도 주고 이것저것 간단히 설명해 줍니다.
나가서 구경하며 걷습니다.
한국인 여행사가 있어서 한번 가 봤으나... 한국 사람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해...
그냥 계속 걷습니다.




저건 전화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유선전화의 보급 전에 무선 전화가 들어와서 그런지 공중전화처럼 돈내고 핸드폰으로 전화 걸라고 저런것들이 길거리에 많습니다.
그리고, 저 근처의 길로 해서 뚤 슬랭? 뚜얼슬랭? 박물관에 찾아갔습니다...
사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찍는게 예의가 아닌것 같다고 그냥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장료는 $2 입니다.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 하는거... 우리나라에 서대문 형무소도 있지만...
이런거에는 익숙해 지지 못할것 같습니다.
밑의 글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이길래 복사해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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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총 인구는 1038만 5천명에 면적은 181,035 평방Km이고 종교는 불교가 98%, 기독교가 1%미만, 기타 이슬람교도로 이루어진 우상과 흑암에 갇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슬픈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30여년 전 약200만명 이상이 아무 이유없이 무참하게 학살된 유명한 킬링필드라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안경을 썼다고 죽이고, 외국어를 안다고 죽이고 피아노를 치고 키타를 칠 줄 안다고 죽이고 손이 부드럽다고 죽이고 학생이 있는 가족이라고 죽이고 키가 크다고 죽이고 뚱뚱하다고 죽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200만명 이상이 살해당했습니다.
이런 참혹한 역사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지금 언급하고 있는 킬링필드의 현장이고 또 다른 곳은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뚤슬랭입니다.

뚤 슬랭 고문센터는 프놈펜 시내의 어느 여자 중고등학교를 개조하여 심문실과 고문실을 만들어 공산 혁명을 위한 악명 높은 숙청의 산실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센터는 직원이 1백 여명이나 되었는데 타자수, 사서, 사진사, 전기기사, 대필사, 전직교사, 심문관 등으로 구성되어 혁명 정부의 충직한 집행자로 활약하였다고 합니다.

심문관들은 대체로 교육을 받지 않은 어린 농부나 전투요원으로 맹위를 떨쳤던 혁명군의 첨병들이었고 이들의 나이는 12세에서 16세로 사람들을 죽인다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잔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 지도부에 충성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뚤슬랭에 가면 학살 현장의 일부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비록 일부지만 여자 대원도 있습니다.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사진을 찍은 뒤 기록으로 남긴 다음 살해하는 것을 보면 크메르 루즈군들은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악랄한 행위에 대해 나름대로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1975년 이곳은 원래 고등학교였지만 킬링필드의 주역 '폴포트'가 형무소로 개조한 후 S-21로 불리면서 17,000명의 인원을 수용했고 1979년 베트남 군인들이 이곳을 점령했을때 이곳에 단지 7명만이 생존해 있었는데 그들은 폴포트 동상 건립을 위해서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 크메르 루즈들이 죽인 사람들을 수용했던 고등학교 건물을 가 보았습니다.
입장료 2불내고 들어가니 고문기구와 수천 명의 사망자들의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복수를 우려한 폴포트는 그 가족과 친척까지 전부 학살했기 때문에 아기와 어린아이의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얼굴들이었으며 한마디로 끔찍했습니다.
어떤 사진은 이미 삶을 포기한 듯 묵묵히 고문당하며 죽어 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학살된 유해의 해골로 캄보디아 지도를 만들어 놓은 사진이 있는데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서운 것도 아니고 놀라운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캄보디아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킬링필드는 크메르 루즈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이 묻힌 묘지입니다.

킬링필드 현장은 프놈펜에서 약20km 떨어져 있으며 가는 도중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으며 유해들이 발굴된 구덩이 20여개가 있으며 유해들을 모아 놓은 탑 등.........
그 당시의 생생한 현장들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원래 과수원 땅이었는데 개간도중 시체가 발견되어 발굴된 죽음의 땅입니다.
줄을 맞추어 묻힌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묻히었기 때문에 삭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가로 세로 3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에 높이는 1.5미터 정도 되는데 그 구덩이 안에 많게는 450구 정도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덩이와 구덩이 사이에 사람이 다닐 수 있게끔 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당시에 사람들이 입었던 옷가지와 뼈가 다 썩지 않아서 굴러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중앙에는 해골 탑이 있는데 1층 2층 층계로 되어 있어서 그곳에 해골들이 놓여있고 맨 밑 칸에는 옷가지들이 쌓여 있는데 정말 처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킬링필드 현장은 프놈펜의 형무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이곳에 옮겨와 처형한 곳인데 총알을 아끼려고 생매장하고 죽창등 갖은 만행을 저지르며 학살을 했습니다.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사격 연습용 표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할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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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인가? 를 간단히 먹습니다.
$1+1500리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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